녹동
NOKODIG

득량도
DEUNGYANG-DO

화도
HAHWA-DO

시산도
SISAN-DO

소록도
SOROK-DO

봉암
BONGAM

 

 

 

작성일 : 10-01-25 21:56
득량도소개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6,422  

 득량도 > 득량도 소개                                            

 

     소  개

 

전남 고흥군 도양읍 득량만에 있는 섬.


위치 : 전남 고흥군 도양읍 득량만
면적 : 1.75 ㎢
크기 : 해안선 길이 6.5 km
인구 : 260(1994)


 

    내  용

 

면적 1.75 km2. 인구 260(1994). 해안선 길이 6.5 km. 도양읍 신흥(新興) 서쪽 3 km 해상에 위치한다. 보성만 입구를 가로막고 있는 교통상의 요지이며, 섬내에는 구릉성 산지가 많으나 해안지대로 경지가 잘 개발되어 있다.

취락은 북서부 선착장 시설이 있는 곳과 남동부에 집촌형태를 이루고 있다. 주민은 농업 ·어업 겸업가구가 대부분이다. 부근 해역에서 새우 ·멸치 ·고등어 ·전갱이 ·갈치 등이 어획되며, 보성만에서는 굴 ·김 ·미역 ·백합 ·바지락의 양식이 활발하다. 농산품으로는 쌀 ·보리 ·콩 ·고구마 등을 생산하여 식량을 자급한다. 교통으로는 남부해안도로와 종단도로가 있고 북서부와 남서부에 선착장 시설이 있어 매일 정기연락선이 운항된다.

 전라남도 고흥군 도양읍 서쪽 바다에 득량도(득량리)라는 섬이 있으며 고흥군과 보성군 사이의 바다를 득량만이라 한다.

이곳이
식량을 얻었다는 뜻의 득량도로 부르게 된 것은 이충무공 때부터였다고 한다. 이곳은 조선시대 장흥부에 속한 목장이 있었으며 임진왜란 때 이충무공이 이곳에서 식량을 얻었기 때문이다

<<난중일기>>에 의하면 1592년 2월 13일 도양 둔전(屯田)에서 벼 3백 석을 실어내 군량미로 사용하였고 같은 해 11월 13일에도 도양에서 벼 820석을 받은 것으로 되어 있어 득량도는 당시에     장흥부의 목장과 함께 도양 둔전의 일부로 추측하고 있다. 당시에는 목장별로 벼, 잡곡 등을 납부토록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 후 일제 때인 1928년에 고흥군 대서면 장선과 보성군 득량면을 잇는 방조제가 건설되었다.  이  방조제의 건설로 1,425정보의 비옥한 간척농지가 조성되어 여기서 많은 쌀을 수확하게 되 었으며   이 쌀은 특히 질이 좋기로 유명하다.

 

     

 

임진왜란당시 이순신이 진행하는 곡식이 쉽게 거두어지지 않았다. 이순신의 어려움을 잘 알았던 하급관리와 전에 함께 일하였던 관속들이 달려 왔다. 장군이 왔다는 소문만으로도 모두가 살았다고 하였다.

이순신과 밤새 담소하였던 군관 이지화가 표주박을 녹동항에 띄웠다. "이 표주박을 따라 가면 큰 곡식 창고가 있다"고 했다. 녹도진성에서 노를 저었다. 반나절을 저어갔다. 득량도에 기착하였다. 이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황해도에서 물길을 따라 온 수로를 잘 아는 뱃사람들이었다. 본격적으로 이순신 장군을 돕기 시작한 것이 이날이었다.

표주박을 좌표삼아 물길을 따라 섬에 당도하여 군관들과 산 정상으로 향하였다. 군량이 가득 쌓여 있었다. 이순신은 산꼭대기 식량을 비축하고 성을 쌓아 마름으로 둘렀다.

멀리서 일본군 탐망첩자들이 바다로 순항 정찰을 하다가 식량을 가득하고 군사들의 불빛이 가득하여 놀라 도망하였다. 체찰사 이원익도 기뻐하였다.

이순신이 이곳에서 식량을 구하자 지명을 얻을 득(得), 곡식 량(糧), '득량도'라고 하였다. 이후 이순신이 식량을 얻어 '득량'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어 그 이름이 전하게 되었다. 지금도 중앙에 위치한 성재봉 223m 정상에는 이순신이 쌓은 옛 득량성 일부가 그대로 남아 있다. 아침에 태양이 눈부시고 오후 노을이 붉게 타 곡식을 건조하기 좋은 곳이었다.

득량도는 전쟁 중 이순신의 식량 비축기지로 비밀 곡식창고이었다. 1598년 7월 24일 절이도 해상전투 이후, 조선수군 이순신 함대와 중국 명나라 제독 진린 함대가 이곳에 머무른다. 중국함대와 연합으로 이곳을 연합으로 순항했던 항구였다. 그런 연유로 당시 이곳을 '진린바다'라고도 불렀던 것을 전한다한다.

남동쪽에는 넓은 만으로 2~3m의 낮은 해안이 대부분이다. 이곳 북쪽과 동쪽은 비교적 경사가 완만한 구릉지와 평지로 이루어져 있다. 지금도 주민들은 유자ㆍ보리ㆍ산두ㆍ감자ㆍ생강ㆍ마늘 등 많은 곡물과 농산물을 생산한다.

득량도는 16세기 비변사지도에서 나타난다. 임진왜란 당시 득량도는 이순신의 목장과 둔전으로 주요한 역할을 하였던 곳이다. 당시 이곳에 곡식 창고를 지키는 군관들의 불빛이 찬란했다.

득량도는 성재봉을 중심으로 남쪽과 서북쪽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남동쪽 해안의 관청마을과 서북쪽 해안에는 선창마을이 있다. 선착장 마을은 두 개의 계류장 일자형 방파제가 있다. 오늘날 관청마을 35가구 정도가 남아 있다. 득량도 남쪽 구릉 큰 마을이다.

득량도에서 가장 중요한 샘이 있다. 이 우물은 조선수군과 이순신이 사용하던 우물로 군사들이 먹고 마셨던 군정이다. 오늘날까지 이순신이 마시고 판옥선에 급수를 하던 '장군샘'에 맑은 샘물이 솟아나고 있다. 사람들은 이순신장군이 마시던 우물이라 하여 '장군샘''장군수'라고 한다.

전남일보 에서 가져옴

 

 

 


 

 


득량5호배시간표202…
2017년 득량도 배시…
득량도 선창 숙박 …
득량도관청 숙박시…
득량도소개
득량도지도
득량도 풍경
선창교회
마을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