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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0-09-07 08:52
소록도의 사연이 아름다워 소개합니다.
 글쓴이 : 소록도
조회 : 1,884  

[섬마을 선생님]녹동초교 소록도분교 김경묵 선생님
“우리 아이들, 한센병 환자를 이웃 아저씨로 대해요”
2010-01-14 오후 12:19:42 게재

섬은 아련한 동경이다. 낭만과 신화가 가득 쟁여져 있는 곳이다. 섬마을 선생님은 왠지 달콤한 로맨스와 깊은 사연을 지닌 주인공 일 것만 같다. 그래서 섬마을 유람에 나섰다. 섬마을 선생님들의 훈훈한 휴먼스토리와 낙도의 아름다운 풍광을 지면에 담아낼 작정이다. 서해의 백령·연평군도에서 남해 한려수도를 돌아 동해의 울릉도까지….

세상 사람들에게 그곳은 ‘금단의 땅’ 이었다. 한때 ‘문둥이 섬’이라는 험한 별칭으로 불리던 곳이다. 지난 100여 년 동안 한센 병(나병) 환자들이 세상과 거리를 둔 채 살아온 공간이다. 육신의 일부가 썩어 문드러지는 고통보다 세상을 피해야 하는 마음의 고통이 피눈물처럼 흐르는 땅….
섬까지 예쁜 다리가 놓여져 있다. 전남 고흥군 녹동항과 소록도를 연결하는 길이 1160m의 케이블 현수교다. 87.5m짜리 주탑 2개가 교량 상판을 매다는 케이블을 드리우고 있다. 녹동항에서 택시를 잡아타고 다리를 건넌다. 다리를 건너 섬 안쪽으로 들어가는 도로로 접어들자 국립소록도병원 검문소가 나타난다. 검문소 직원이 행선지를 확인하고는 통행을 허락한다.
빨간 벽돌로 지어진 집들이 무성한 숲속에 띄엄띄엄 박혀 있었다. 다른 섬들과 마찬가지로 마당에 잡초가 무성한 빈 집들이 많이 눈에 뛴다. 택시가 멈춰 선 곳은 노란 페인트칠을 한 1층짜리 건물 앞이었다. 녹동초등학교 소록도 분교다. 짧은 복도를 따라 교실 3개가 나란히 붙어 있었다. 복도를 기웃거리다가 선생님 한분을 만났다. 5~6학년 담임을 맡고 있는 김경묵(38)선생님이다. 아담한 교무실의 작은 소파에 앉아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었다. 난로 위에 올려진 주전자의 주둥이에서 하얀 김이 퐁퐁 뿜어져 나온다.
우리 학교는 교사 세 명과 학생 아홉 명을 식구로 두고 있습니다. 학생들은 모두 병원이나 우체국, 파출소 등 공공기관 직원의 자녀들이고요. 우리 학교의 전신은 1930년 3월 7일 개교한 소록도 심상소학교(일제 강점기 초등교육기관)입니다. 지금은 학생수가 줄어들어 녹동초등학교 분교로 편입됐지만, 본교인 녹동초등학교보다 오랜 역사를 지닌 곳입니다.”
소록도는 일반인들의 거주지인 1번지와 환자들의 생활공간인 2번지로 구분된다. 1번지에는 병원과 관공서 직원들인 일반주민 200여명이 거주하고, 2번지에는 환자 600여명이 거주하고 있다. 한 때 6000명을 넘었던 환자들은 1963년 한센 병 환자 강제수용제도가 폐지되면서 전국 각지의 정착촌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소록도의 시설들은 일반인과 환자가족들이 사용하는 공간이 모두 구분돼 있어요. 학교나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환자가족 아이들이 다니던 학교는 녹산 초등학교라고 따로 있었습니다. 당시 녹산초등학교에도 교사가 파견됐지만 학교 운영만 할 뿐 학생들을 직접 지도하지는 않았다고 해요. 환자 가족들 중에서 선발한 강사를 내세워 교육을 했답니다. 녹산 초등학교는 한 때 학생수가 600여명에 달하던 큰 학교였지만 20여 년 전 폐교가 됐지요.”
그렇더라도 소록도의 교사생활은 뭔가 다르지 않을까?
“바깥에서는 소록도의 학교생활에 대해 일정한 선입견을 가지고 바라보게 마련이지요. 그렇지만 다른 곳의 생활과 큰 차이가 없어요. 굳이 있다면 이곳 학부모들이 대부분 의사나 간호사, 경찰 등 공무원들이라는 점입니다. 선생님을 어려워하는 다른 농어촌 지역의 부모님들과는 다르지요. 가정의 생활이나 학업 수준, 선생님을 대하는 분위기 등이 도시학교와 비슷한 점이 많아요. 아, 또 한 가지 있어요. 눈썹이 적고 희미한 선생님들은 환자로 오해받는 경우가 있답니다. 특히 소록대교가 완공되기 전 배를 타고 오갈 때에는 멀쩡한 선생님을 환자로 오해해 슬슬 피하는 승객들도 있었어요.”
외모에 대한 인간의 집착은 자못 처절하기까지 하다. 아름다운 얼굴과 날씬한 몸매를 가꾸기 위해 엄청난 시간과 돈, 열정을 쏟아 붓는다. 살 빼는 약을 먹고, 지방제거 수술을 받는가하면 주름살 펴는 주사를 맞기도 한다. 이처럼 외모를 중시하는 인간들에게 신체의 일부가 썩어 문드러지는 한센 병은 당사자에겐 천형(天刑)이요, 관찰자에겐 꺼림칙함을 넘어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근원이기도 할 것이다. 소록도에서 생활을 하다보면 이런 환자들과 마주치지 않을 수 없다. 그럴 때 선생님이나 아이들의 기분은 어떨까.
“해변이나 공원을 걷다보면 이목구비가 뭉그러져 있거나 손가락 발가락이 몇 개쯤 떨어져 나간 주민들을 만나게 되지요. 소록도 낚시 포인트가 환자 촌 안쪽에 있어요. 그곳 바닷가에서 나란히 앉아 낚시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도 별로 이상한 기분이 들지는 않더라고요. 단지 병을 앓고 있는 환자일 뿐이잖아요.”
선생님은 아이들 역시 불쑥 환자들을 마주쳐도 전혀 놀라지 않고 오히려 친근하게 인사까지 한다고 했다.
“환자들을 이웃 아저씨라도 만난 것처럼 대해요. 무서워서 움찔한다거나 꺼림칙해 하는 기색이 없답니다. 함께 밥을 먹거나 직접적인 접촉을 하는 건 아니지만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누고는 합니다. 정말 한센 병에 대한 편견이 없는 아이들이에요.”
선뜻 그의 말을 믿기 어려웠다. 어른들도 비정상적인 외모를 지닌 사람을 만나면 본능적으로 움츠러들게 마련 아닌가. 그런데 어린 아이들이 정말로 한센 병 환자들을 태연하게 대할 수 있을까. 쉬는 시간 운동장에서 만난 아이들에게 물었다. 거리에서 흉한 모습의 환자들을 만나면 무섭지 않니?
“아무렇지도 않은데요.”
“그냥 동네 어른들일 뿐일걸요.”
“어렸을 때부터 많이 봐 온 모습들이라 이젠 익숙해요.”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걸까. 어린 학생들이 어떻게 이처럼 의연할까. 전혀 딴 세상의 아이들을 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옆에서 아이들과의 대화를 듣고 있던 선생님이 고개를 끄떡일만한 해석을 내 놓는다.
“가정교육의 덕입니다. 여기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한센 병 환자들을 보통사람처럼 대하도록 일상 속에서 교육을 받습니다. 부모님들이 입버릇처럼 아이들에게 말합니다. 저 분들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다, 무서워하지 마라…. 부모님이 자녀들과 함께 거리를 가다가 환자분들을 만나면 공손하게 인사를 하도록 합니다.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라 바로 우리 이웃 할아버지, 할머니, 아저씨, 아줌마로 대하도록 가르치는 거지요. 그런데 바로 다리 건너 녹동에 사는 아이들만 하더라도 이곳 환자들을 몹시 꺼리고 무서워합니다. 편견이란 게 참 무서운 거지요.”
아이들은 백지다. 그 백지위에 그림을 그리는 행위가 가정교육이요, 학교교육이다. 어릴 때부터 가정이나 학교에서 ‘문둥이’가 어린이 간을 빼 먹는다는 황당한 이야기를 듣고 자란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서까지 한센 병 환자에 대한 편견을 지우지 못한다. 반면 신체 부위 중 몇 군데가 떨어져 나갔다고 해도 자신과 다를 바 없는 똑같은 사람이라는 교육을 받고 자란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한센 병 환자들을 스스럼없이 대할 수 있게 되는 게 아닐까.
“한센 병은 전염의 위험이 거의 없는 병입니다. 초기에 발견되는 완치될 뿐 아니라, 늦게 발견되더라도 약을 복용하면 병의 진행과 전염을 막을 수 있습니다. 직접 환자들을 접하는 병원 관계자들도 예전엔 마스크나 장갑을 착용했지만 요즘은 하지 않거든요. 이곳 아이들이 거리에서 만나는 환자들을 꺼리지 않는 것도 그런 사실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지요.”
세상의 시선에 가장 민감한 건 환자들이다. 외지인들을 들어오면 그들을 꺼리고 피하려하는 건 바로 환자들이다. 그렇지만 그들도 이곳 아이들을 만나면 편안하게 대한다. 다른 마을과 마찬가지로 보통 사람들이 사는 세상인 것이다.
선생님은 부부교사다. 아내인 류청하(35) 선생님은 지금 녹동초등학교에 근무하고 있다. 아내는 광주교대 2년 후배이지만 소록도 근무는 자신보다 선배다.
“아내는 2005~2006년 사이 소록도 근무를 했습니다. 올해 초 이곳으로 전근을 온 이후 아내에게 조언을 많이 구합니다. 아내가 지도했던 학생들을 고스란히 제가 맡게 됐잖아요. 아이들의 학업태도나 성격, 가정환경, 부모님들의 성향 등 많은 이야기를 아내로부터 듣고 있습니다. 아이들 지도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지요.”
다시 소록도를 빠져 나오는데 마음 한 구석에서 부끄러움이 스멀스멀 기어 나온다. 그동안 얼마나 큰 편견과 선입견을 가지고 소록도와 한센 병 환자들을 바라보고 있었던가. 그릇된 편견과 선입견이야말로 자신의 마음을 가리는 장벽이요, 넓은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격리시키는 좁은 감옥임을 다시 깨우치는 순간이었다.

박상주 오지여행가

섬 전체가 잘 가꾸어진 하나의 정원
후미진 바닷가에 붉은 벽돌건물 하나가 외로이 서 있었다. 건물 옆 해변엔 딱 한 사람이 누울 만한 크기의 철판이 버려져 있다. 한센 병 환자들의 시신을 화장하는 곳이다. 한센 병 환자들을 강제 수용하던 시절엔 섬을 벗어나는 유일한 통로이기도 한 곳이었다.
철판은 소각로에 시신을 집어넣을 때 올려놓는 판이다. 천형(天刑)으로 문드러진 고단한 육신에서 벗어나 파란 연기로 날아가는 곳이다. 한센 병 시인 한하운의 표현대로라면 한센 병 환자들이 파랑새 되어 푸른 하늘, 푸른 들로 훨훨 날아간 곳이다.

‘나는/나는/죽어서/파랑새 되어/푸른 하늘/푸른 들/날아다니며/푸른 노래/푸른 울음/울어 예으리.
나는/나는/죽어서/파랑새 되리.’ (한하운의 ‘파랑새’)

얼마나 육신의 짐이 무거웠으면 파랑새가 되어 날고 싶었을까. 화장터에서 그리 떨어지지 않은 산자락에 한센 병 환자들의 마을이 들어서 있다. 저 마을 주민들은 이곳 화장터 굴뚝에 연기가 피어오를 때마다 어떤 생각을 할까.
한센 병 환자들이 소록도에 처음 발을 들여놓기 시작한 시점은 19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외국 선교사들이 시립나요양원을 설립한 뒤 한센 병 환자들을 수용하기 시작했다. 현재 국립소록도병원의 전신은 1916년 설립된 소록도자혜의원이다.
지금은 지방문화재자료 제238호로 지정된 자혜의원 앞에 작은 비석하나가 세워져 있었다. ‘花井院長彰德碑’(화정원장창덕비). 안내판에 비석이 기리는 주인공의 사연이 적혀 있다. 하나이(花井)는 소록도 자해의원(현 국립소록도병원의 일제시대 명칭)의 제 2대 원장이었다. 1921년 6월 23일부터 1929년 10월 16일까지 8년 4개월 동안 재직한 그는 환자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일본식 생활양식을 폐지하고, 본가와의 통신이나 면회, 자유로운 신앙생활을 허용했다.
환자 교육을 위해 3년제 보통학교를 설립하고 독서와 체육활동을 장려했다. 이에 감동한 환자들이 직접 경비를 모금하여 이 비석을 세웠다. 해방 후 일제 잔재 청산정책에 의해 비석이 폐기될 위기에 처하자 환자들이 몰래 땅에 묻었다가 훗날 다시 세웠을 정도로 하나이 원장에 대한 환자들의 존경심과 애정이 깊었다.
소록도는 점 전체가 잘 가꾸어진 정원이다. 가지를 척척 늘어트린 노송들과 두2~3 그루가 모여 마치 한 그루처럼 보이는 후박나무, 아직도 붉은 꽃송이들을 일부 매달고 있는 동백나무, 앙상한 가지만 남은 은행나무 등이 한 데 어우러져 무성한 숲을 이루고 있었다. 숲 사이를 관통하는 도로 변의 작은 관상목들은 단정하게 이발을 하고 있었다. 자연림과 인공의 정원수가 그림처럼 어우러진 풍경이다.
특히 소록도 중앙공원은 관광객들이 몰려 들 정도로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곳이다. 일제 강점기에 연인원 6만여 명의 한센 병 환자들을 강제 동원해 1만 9,800㎡ 넓이의 공원을 조성했다. 완도 등 이웃 섬에서 암석을 날라 오고, 일본과 대만 등지에서 관상수를 들여왔다. 소나무와 황금 편백, 향나무, 후박나무, 삼나무, 팽나무, 히말라야시더, 종려, 치자, 팔손이나무 등 관상수 100여 종이 심어져 있다. 1971년과 1972년 공원 확장이 이루어져 현재 면적은 약 2만 5,000㎡에 이른다.
소록도의 나무들은 아래 부분이 일정한 모양으로 다듬어져 있다. 상처를 입은 나무들도 많다. 환자들을 위로하기 위해 몇 마리 기르기 시작한 사슴들이 300여 마리로 불어났고, 그들이 나무의 아래 부분의 잎을 뜯어 먹고 있기 때문이다. 어린 사슴의 모양을 한 소록도는 사슴들에겐 낙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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